피케티, 불평등, 아주 개인적인 생각 정치/시사

1. 누군가 부유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

2. 사회 전체의 부가 증대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관계된 사람들에게까지 평생을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재산은 전적으로 그 소유자에게 처분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3. 만약 자산에 의한 소득, 부가 부를 낳는 체제가 자본주의의 필연적 한계(?)라고 해도,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산의 형성 과정에 부당한 특혜가 없었다면 말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조세제도들, 상속세, 양도소득세, 누진세 체제에 반대하지 않는다. 부유세든 토빈세든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하지만 세금 징수의 논리가 "나쁜 부자들을 족치고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가 되버리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인 평등의 지향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부유한 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건 그럴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과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유지시키는 건 (그럴 능력이 있는)공동체에 소속된 모든 이들의 마땅한 의무이다. 부자들은 그 능력이 더 넉넉하기 때문에 더 많이 부담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6. 해서, 피케티의 논증이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해도 별 감흥은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런 이념적(?)인 논의보다는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더 적절한 조세, 교육, 복지, 성장정책을 고민하는 쪽이 훨씬 이롭다고 생각한다.

덧글

  • 지나ㄱ다 2014/06/24 15:11 # 삭제 답글

    경제학 관련 논쟁 보면 이상하게 분업 협업의 중요성이 명확히 강조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평등이라는 것은 소득의 측면에서 그것도 특정 기준을 만들어서 판단하는 것인데 분업 협업을 하다보면 당연히 소득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분업 협업 시스템이 고도로 조직화, 분화 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분업과 협업이 아니고서는 소득을 증대시킬 별다른 방법이 없지요. 평등한 분배로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킨다? 소득 증대의 우선순위가 밀려도 한참 밀리는 주장입니다.

    피게티의 논증은 그렇게 볼 때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봅니다. 특히, 누진세를 강화해서 소득 재분배를 하자는 주장은 창출된 부를 정부에게 맡겨 낭비하자는 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멋부리는 눈토끼 2014/06/24 21:16 # 답글

    네이버캐스트에 실렸던 최장집의 <21세기 자본론> 소개문은 뭐랄까, 고등학생 대상으로 하듯이 아주 얄팍하게 논의해 놓았더군요. 그 서평만 보고서는 이게 정치학 책인지 경제학 책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제학적 논리에 대한 설명이 없었어요. 특히 r>g와 그 해결책으로 부자에게 누진세를 물리자는 대목은 정말...후

    그건 그렇고, 3번은 왠지 노직의 권원론이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네요. 최초의 재화소유가 정당했다면 그 자발적 교환의 결과물도 정의로운 것이라는.
  • ㅁㄴㅇㄹ 2014/06/24 21:42 # 삭제

    최창집 선생님은 정치학자이시지 경제학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 멋부리는 눈토끼 2014/06/25 13:04 #

    그러니까 정치학자가 왜 경제학을 논하는지 그게 의문이 듭니다. 제일 중요한 건 피케티 이론의 논증이고 그게 선행되어야 제시된 대안들을 검토할 수 있는 건데, 갑론을박이 진행 중인 대목들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전제한 채로 정치적인 결론(누진세 등)을 내려버리면서 마치 새롭게 인정받은 시각인마냥 쓰는 건 좀 그렇더군요.
  • Geormi 2014/06/25 17:46 # 답글

    6. 소득과 분배에 대한 피케티의 일련의 논문을 쭈욱 보고 있는데요, 그 어느 논문에서도 이 주제에 대해 이념적 논의로 끌어들인 구석이 없습니다. 대체 왜 이게 이념적 논의로 받아들여지는지 의아하네요. 게다가 재분배에 대한 매커니즘적 고민은 93년 JET 논문에서부터 최근 연구까지 일관적이기도 하구요. 피케티는 님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런 연구를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채 그걸 이념적 논의라고 하시는군요.
  • 설봉 2014/06/25 23:14 #

    피케티의 연구 자체가 이념적이라는 게 아니라, 그 피케티의 연구를 인용한 진보진영의 반응을 이념적이라고 한 겁니다. 그 연구를 읽어보지 못해서, 연구 자체를 이념적이라고 여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원인, 이유를 불문하고 불평등은 나쁜 거야! 그러니까 세금으로 부자들을 조져야 돼!")

    덧붙여서, 피케티의 연구를 직접 보셨다고 해서 여쭙는데, 21세기 자본론의 핵심은 "경제성장률보다 자본수익률이 높으니 불평등은 계속 확대된다. 고로 xx라는 수단을 써서 이를 시정해야 한다" 아닙니까?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고, 이 전제는 충분히 이념적(정치적)이지 않습니까?
  • Geormi 2014/06/26 06:01 #

    책 얘기였군요.. 교양서적은 좀처럼 읽을 일이 없어서 안봤는데, 일반인 대상의 교양서적이라면 학술논문에서의 서술방식과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학문적인 논의로만 보자면 전제든 가정이든 가치중립적입니다. 가정을 바탕으로 이론을 만들고, 이론의 의미를 적용할때 "이 가정이 맞다면 결론이 이렇다"라는게 일반적인 서술방식이구요. 그러니까 말씀하신 명제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면 불평등은 확대된다"가 되겠죠. 이 가정에 대해 적절한지, 맞는 가정인지에 대해 따져볼 수는 있지만, 가정 자체가 이념적이라는건 좀처럼 동의하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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